'책'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09.07 Atonement
  2. 2009.07.24 왕자 이야기
  3. 2008.11.05 괴상한 버릇 2
  4. 2008.05.25 The Life and Strange Surpris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of York Mariner 2
  5. 2008.02.26 tears

Atonement

2009. 9. 7. 03:13

 
무더운 어느 여름날, 열세 살의 브리오니 탈리스는 우연히 창 밖을 내다보다가 언니 세실리아가 옷을 벗어던지고 정원의 분수대에 뛰어드는 것을 목격한다. 자매의 어릴 적 친구이자 케임브리지에서 얼마 전에 돌아온 의사 지망생 로비 터너가 그런 세실리아를 지켜보고 서 있다. 그날 하루가 끝날 무렵, 칼리스 저택의 영지에서는 또다른 한 소녀가 강간을 당하고, 이때부터 세 사람의운명은 생각지도 못했던 엇갈림을 겪게 되는데……
 
*소설 및 영화의 스포일러를 담을 수 있습니다.


왕자 이야기

2009. 7. 24. 01:32

※ 스포일러 주의.


 

괴상한 버릇

2008. 11. 5. 03:32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한 가지 괴상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어른들에게 무슨 꾸중을 들을 일이 있거나 하면 지레 겁이 나서 곧잘 광 속 같은 데로 숨어들어가 잠이 들어버린 척하곤 했다. 꾸중을 들을 일뿐 아니라 부끄럽고 난처한 일이 있을 때도 늘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은 그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없으면, 으레 녀석이 또 무슨 일통을 저지른 게로구나 짐작을 했고, 집 안을 이리저리 뒤져서 녀석을 찾아내 놓고 보면, 그때마다 어른들의 그런 짐작은 빗나간 일이 거의 없었다. 한데 그가 걸핏하면 광 속 같은 데서 잠이 들어버린 척하는 것은 그저 그런 식으로 잠을 자는 척하고 있는 것만도 아니었다. 잠을 자는 척하는 요령이 더 괴상했다. 잠을 자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숫제 죽은 사람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었다. 목과 사지를 보기 흉하게 축 늘어뜨리고서는 사람이 가까이 가도 통 숨소리를 내지 않았다. 몸을 비틀어대도 정말 죽은 사람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건드리는 대로 몸을 흔들거리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바로 그런 장난 때문에 더욱 심한 꾸중을 듣곤 했다. 하지만 꾸중을 들어도 '그'의 버릇은 좀처럼 고쳐지질 않는다. 나중에는 숫제 그 버릇이 동무들과의 놀이로까지 변해 가고 있었다. 걸핏하면 아무 데서나 벌떡 뒤로 나자빠져서는 '나는 죽었다'고 앙징스럽게 숨을 한참씩 끊어버리는 바람에 옆엣 친구들은 슬그머니 겁을 먹기도 했다. 이윽고 '그'는 초등학교 입학을 하게 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다시 중학교를 다니게 되지만 그 버릇만은 여전히 고치려고 하질 않는다. 나이를 먹어 가면 갈수록 '그'에게선 오히려 그 괴상한 버릇이 나이만큼이나 더 익숙해지고 완벽스러워져 가는 것이었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될 무렵쯤 해서는 그것이 하나의 진지한 휴식술로 발전되고 있었다. ‘그’는 집 안이나 학교에서 무슨 낭패스러운 일만 당하고 나면 으레 자기의 어두컴컴한 골방으로 들어가 몇 시간이고 그런 가사상태를 지속하면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기분이 너무 암담스러워질 때도 그랬고, 흥분을 하거나 긴장이 될 때도 그랬다. 그는 이제 숨을 참을 수 있는 시간이 놀라울 만큼 길어져 있었고, 그렇게 숨을 참고 있는 동안은 자기가 정말 숨을 끊어버린 것인지 어쩐지도 잘 알 수 없을 만큼 불편을 느끼지 않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숨을 조금도 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슴과 배를 들먹이지 않고 코끝으로만 조금씩 조금씩, 아주 은밀스럽게 공기를 들이마시는 연습에 그만큼 육신이 익숙해져 있는 까닭이었다. 한데 이상한 것은 ‘그’가 그렇게 숨을 참고 누워서, 나는 정말로 죽은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것처럼 마음이 편해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최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어쨌든 그가 그렇게 생각을 정해버리고 나면 아무리 절실하게 급한 일도 정말 급한 것 같지가 않고, 불쾌한 일도 더 이상 불쾌해지지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 가사상태 속에서는 처음부터 무슨 절실한 일이나 불쾌한 일이 따로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그런 생각 자체가 호흡을 잃어버린 육신 속에서 함께 죽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 이상 완벽한 휴식의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어렸을 때의 버릇은 이제 ‘그’에게서 그런 휴식의 방법으로까지 발전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데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하고 난 다음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이젠 ‘그’의 생활이나 주변이 전보다도 훨씬 복잡해지고 낭패스러운 일도 그만큼 많아졌을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긴장이나 피로가 더욱 자주 찾아왔고, 그때마다 ‘그’는 그것에서 도망치기 위해 자주 그 가사의 잠을 자야 했다. 그 시간도 더욱더 길어져갔다. 어떤 때는 그 가사의 잠이 하루 종일 계속되는 때도 있었다. ‘그’의 아내는 속이 상해 죽을 지경이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버릇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만큼 청승맞고 끔찍스럽기만 했다. 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꼴만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한데 그러던 어느 날, 이날부터 ‘그’의 아내는 남편의 그 망칙스러운 꼴을 더 이상 견뎌야 할 필요가 없어지고 만다. 물론 이혼을 해야 할 필요도 없어진다. ‘그’의 버릇에 드디어 고장이 생긴 것이다. 고장이 생긴 건지 일부러 그랬는지는 끝내 알려지지 않고 말지만 하여튼 이날도 ‘그’는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분이 몹시 우울해져가지고 와서 또 그 가사의 잠을 시작한다.

“저런 꼴로 늘 죽어 눕기가 소원이람 차라리 정말로 한번 죽어보기라도 하라지.”

‘그’가 막 그 가사의 잠을 시작했을 때 ‘그’의 아내가 혼자 무심히 그렇게 중얼거린다. 한데 ‘그’는 정말로 그것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영영 그 가사의 잠에서 깨어나질 않고 만다…….



이청준作
"소문의 벽"中

로빈슨 크루소
원제 :  The Life and Strange Surpris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of York Mariner by Daniel Defoe
[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그의 신기하고 놀라운 모험]

(1993년 발행, 김병익·최인자 역[순서대로 상하권], 문학세계사)

<리뷰가 스포일러를 담을 수 있으니 주의하길>

책을 한무더기 쌓아놓고 아직 보지 않은 책들이 많긴하다. 그래서 요즘은 사놓은 책들을 하나하나 읽으려 노력한다. (제일 먼저 볼 것은 며칠전에 산 열림원 쥘베른 전집의 신작인 황제의 밀사겠지.)

하지만 얼마전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찾던중 내 눈에 띈 책이 있었다.
바로 로빈슨 크루소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책을 찍은 사진

사실 주된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빈슨 크루소라는 사람이 과한 욕심으로 뱃길에 나섰다가 28년동안 무인도 생활을 하게되고, 결국 극적으로 자신의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간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중앙도서관의 책꽂이에 있는 모습을 보니 흥미로운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내가 알고 있는 스토리는 그정도가 전부인데 상,하권이나 있다는것을 보고는 어떻게 스토리가 부풀려졌는지, 내가 지금까지 알던 것과는 어떻게 다른지 한번 알아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주저없이 책 두권을 뽑아들고 대출을 하면서 책의 목차를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지금까지 내가 알던 얘기는 상권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럼 이해를 위해 하권의 목차를 한번 써보자.


나의 섬을 다시 찾아가다
스페인 사람들과 반란자들
다시 나타난 야만인들
대전투
스페인 사람들이 받은 대접
섬에서의 결혼식
윌 에킨즈의 회개
프라이데이의 죽음과 마다가스카르에서의 싸움
나 없이 항해를 하다
중국으로 가는 길
중국 횡단 여행
타타르 족 사이를 지나가다
시베리아와 러시아를 지나 고향으로 돌아가다


여담이지만 나만 그랬을지는 몰라도 중간의 프라이데이의 죽음이라는 소제목은, 책을 읽기 전에초대형 스포를 당한 기분이라 아직까지 읽기가 꺼려질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중국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관심이 없었던 내가 바보스러워질만큼 말이다.

어쨌든 일단 상권은 빠르게 읽어 나갔고 하권도 잡고 있으니, 리뷰라긴 뭐하지만 느낀점을 쓸 최소한의 여건은 된다고 생각하고 마저 써보기로 하자.

어렸을 적 문학 전집등에서 로빈슨 크루소가 빠져있으리란 생각은 하기 어렵다. 그만큼 모두들 잘 아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로빈슨의 고립과 그 상황을 극복하려는 고된 노력, 그리고 동료를 얻고, 전투를 치룬 뒤 탈출에 성공하는 모습까지. 그런데 압축된 내용만을 읽은 사람이 대부분일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원래 내용 하나 하나에 들어있는 의미가 이 시점의 나에게 꽤나 새롭게 다가왔다. 그 예를 한번 꼽아보자면 신앙심에 대한 장황한 언급이 그 중 가장 크다 할 것이다. 18세기 영국인의 글이라는 점에서 기독교적인 냄새는 지울 수 없겠지만, 현재 내가 보기에는 깊은 생각이 필요할만큼 이 현상이 강하다. 가령 로빈슨이 무슨 일을 하나 하고나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신을 찾는다던지,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등의 언급이 한 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점을 꼽아보자면,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진취적인 영국인의 이미지를 재확인함과 로빈슨을 통해 나타난 서구 중심주의의 재발견이 뚜렷이 보인다. 다니엘 디포는 로빈슨을 통해 토인의 식인 문화를 읽어낸다. 이에 대해 로빈슨은 어찌 생각하면 우유부단해 보일만큼 처음에 결론을 확실히 짓지 못한다. (이와 관련해 심리적 갈등이 꽤나 볼만하다) 그러나 결국 프라이데이를 구하면서 야만인들에 대한 심판을 내린다. 이 대목중 기억 나는 부분을 써보자면 이렇다

- 그러나 금방 말한 그 잔인한 야만족과 서로 잡아먹는 추악하고 흉칙한 짐상 같은 풍습에 대한 극도의 증오감이 가슴에 깃들어 있어서 기억을 씻지 못하고 우울한 기분을 벗어날 수 없었다.…… 196.pg[상권]
- 더구나 내 정신은 복수심으로 2,30명을 칼로 찔러 죽이는 유혈의 통쾌함을느꼈다. 나는 사람을 잡아먹는 야만인들이 놀던 장소와 흔적을 볼 때마다 공포감에 떨었는데 그만큼 내 원한도 더욱 깊어졌다.…… 199pg[상권]

이 부분들은 로빈슨이 그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증오까지 하게 되는 부분을 나타낸 부분이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로빈슨은 이에 대해 종교적인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껏 서구의 윤리의 측면에서 야만인(이 말 자체도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문화가 다르다는 점으로 야만적이라는 말을 꼭 써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해를 돕기위해 이 단어를 계속 쓰겠다.)들을 증오까지 하게 되었다면, -그 윤리의 바탕은 분명 기독교일 것이다.- 이제 기독교의 관점에서 다시 그들을 생각해 본다는 점이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좀 길진 몰라도 읽어볼만 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 지방 사람들의 괴상한 풍습을 보고 공포로 말미암아 처음엔 타오르는 격정만 느꼈지만, 사실 그들 죄에 대해서는 전혀 깊이 검토해 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런 방법으로만 그들의 잔인하고 타락한 야망을 불태우게 된 것은 세계를 지배하는 하나님이 묵인해 주는 것 아닌가? 그래서 악습은 없어지지 않고 대를 거쳐 내려오지 않는거? 또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고 지옥에 떨어질 만큼 타락한 자연의 본성에 쫓겨 이처럼 잔인한 일을 행하고 무서운 풍습을 이어받은 것이 아닌가? 나는 이런 점까지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까 말한 것처럼 오랫동안,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아무런 소득없이 멀리 순찰하는 일과에 진력이 나기 시작하자, 내 행위 자체에 대한 견해가 바뀌면서, 보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정말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권한과 사명감이 있다고 그들을 심판하고 처형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죄는 하나님이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런 처벌도 주지 않고 몇 세대 동안 내려온 게 아닌가? 또 어떻게 보면 그들 스스로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되도록 한 것이라 여겨지지 않는가? 그들은 내게 어떤 피해를 입혔는가? 나는 무슨 권리로 그들끼리 하는 무차별한 피의 분쟁에 가담하려는가? 혼자서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심사숙고했다.이 특별한 경우를 하나님 자신이 어떻게 심판하는가에 대해 어떻게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200-201pg, 상권]

이렇게 로빈슨의 생각을 들여다 보면 다니엘 디포의 생각도 언뜻 볼 수 있다. 서구 윤리의 입장에서만 외부 세계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종교를 토대로 다시 한번 밖을 내다보자는, 어찌보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각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지금까지 책 내용을 봤다면 내가 빌린 책을 한번 다시 봐보기로 하자. 이 책은 93년에 출판되어 바로 그 다음해에 학교 도서관에 들어온 듯 하다. 인증샷이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사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책을 열자마자 오래된 책의 냄새가 강하게 풍겨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꺼리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역하게 느껴질만큼 말이다. 이만큼 다른 사람들이 많이 보았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넘기는데 한장 한장마다 반가운 표시들이 보였다. 바로 독자들의 주석을 보았다는 점이다. 학교 입장에서는 달가워 하지 않을 단순한 낙서(전화번호나 이름, 과 같은 정보들)들 부터 이 책을 보고 느낀점을 상세히 쓰거나 중간 중간에 주석을 단 점은 e-book에선 결코 느낄 수 없는 느낌일 것이다. 물론 인터넷으로 바로 댓글을 확인할 수 있고 더 빠른 측면이 있지만, 오래된 책의 세월과 함께 께적거린 주석을 읽은 기분과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만 이에 대한 생각을 마쳐야 할 것 같다. 이제 하권을 반납일까지 마저 읽고 황제의 밀사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tears

2008. 2. 26. 23:20

책을 보고 눈물을 흘려본 적 있나?
난 아직 두 번 밖에 없어

첫번째는 아Q정전을 보고였지
사실 처음 그 책을 봤을 때는 그냥 별 감흥이 없었지
이게 왜 명작인가 하고
그런데 다시 한번 더 보게 되었을 때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다가왔어
'아Q'는 단순히 개인이나 중국인만의 아픔을 보여주는 화자가 아니야
'아Q'는 당시 세계가 제국주의의 논리 밑에 편입되면서
고통을 겪는 식민지인들의 슬픔또한 보여준다 할 수 있지
그리고 조선을 생각해봤어
조정은 무능해 백성은 굶주리고 나라를 빼앗기고...
그 피해를 지배층이 봤을까?
아니 '아Q'같은 백성들이겠지
그 생각을 해보니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오더군

두번째로는 조세희 선생님의 일명 '난쏘공'연작을 보고야
'난쏘공'은 너무나 잘 알테니 다른 설명은 필요 없겠지?
소설속에 나오는 '낙원구 행복동'의 사람들을 보며
과연 그들은 어떻게 되가는가
그들이 잘못한게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21세기...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자신들을 묶던 사슬을 풀었을까?
라는 생각들을 하니 어느새 눈에 눈물이 고이더군

혹 이글을 본다면 자신이 눈물날만큼 봤던책이 있나 생각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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