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상한 버릇

2008. 11. 5. 03:32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한 가지 괴상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어른들에게 무슨 꾸중을 들을 일이 있거나 하면 지레 겁이 나서 곧잘 광 속 같은 데로 숨어들어가 잠이 들어버린 척하곤 했다. 꾸중을 들을 일뿐 아니라 부끄럽고 난처한 일이 있을 때도 늘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은 그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없으면, 으레 녀석이 또 무슨 일통을 저지른 게로구나 짐작을 했고, 집 안을 이리저리 뒤져서 녀석을 찾아내 놓고 보면, 그때마다 어른들의 그런 짐작은 빗나간 일이 거의 없었다. 한데 그가 걸핏하면 광 속 같은 데서 잠이 들어버린 척하는 것은 그저 그런 식으로 잠을 자는 척하고 있는 것만도 아니었다. 잠을 자는 척하는 요령이 더 괴상했다. 잠을 자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숫제 죽은 사람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었다. 목과 사지를 보기 흉하게 축 늘어뜨리고서는 사람이 가까이 가도 통 숨소리를 내지 않았다. 몸을 비틀어대도 정말 죽은 사람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건드리는 대로 몸을 흔들거리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바로 그런 장난 때문에 더욱 심한 꾸중을 듣곤 했다. 하지만 꾸중을 들어도 '그'의 버릇은 좀처럼 고쳐지질 않는다. 나중에는 숫제 그 버릇이 동무들과의 놀이로까지 변해 가고 있었다. 걸핏하면 아무 데서나 벌떡 뒤로 나자빠져서는 '나는 죽었다'고 앙징스럽게 숨을 한참씩 끊어버리는 바람에 옆엣 친구들은 슬그머니 겁을 먹기도 했다. 이윽고 '그'는 초등학교 입학을 하게 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다시 중학교를 다니게 되지만 그 버릇만은 여전히 고치려고 하질 않는다. 나이를 먹어 가면 갈수록 '그'에게선 오히려 그 괴상한 버릇이 나이만큼이나 더 익숙해지고 완벽스러워져 가는 것이었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될 무렵쯤 해서는 그것이 하나의 진지한 휴식술로 발전되고 있었다. ‘그’는 집 안이나 학교에서 무슨 낭패스러운 일만 당하고 나면 으레 자기의 어두컴컴한 골방으로 들어가 몇 시간이고 그런 가사상태를 지속하면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기분이 너무 암담스러워질 때도 그랬고, 흥분을 하거나 긴장이 될 때도 그랬다. 그는 이제 숨을 참을 수 있는 시간이 놀라울 만큼 길어져 있었고, 그렇게 숨을 참고 있는 동안은 자기가 정말 숨을 끊어버린 것인지 어쩐지도 잘 알 수 없을 만큼 불편을 느끼지 않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숨을 조금도 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슴과 배를 들먹이지 않고 코끝으로만 조금씩 조금씩, 아주 은밀스럽게 공기를 들이마시는 연습에 그만큼 육신이 익숙해져 있는 까닭이었다. 한데 이상한 것은 ‘그’가 그렇게 숨을 참고 누워서, 나는 정말로 죽은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것처럼 마음이 편해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최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어쨌든 그가 그렇게 생각을 정해버리고 나면 아무리 절실하게 급한 일도 정말 급한 것 같지가 않고, 불쾌한 일도 더 이상 불쾌해지지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 가사상태 속에서는 처음부터 무슨 절실한 일이나 불쾌한 일이 따로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그런 생각 자체가 호흡을 잃어버린 육신 속에서 함께 죽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 이상 완벽한 휴식의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어렸을 때의 버릇은 이제 ‘그’에게서 그런 휴식의 방법으로까지 발전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데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하고 난 다음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이젠 ‘그’의 생활이나 주변이 전보다도 훨씬 복잡해지고 낭패스러운 일도 그만큼 많아졌을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긴장이나 피로가 더욱 자주 찾아왔고, 그때마다 ‘그’는 그것에서 도망치기 위해 자주 그 가사의 잠을 자야 했다. 그 시간도 더욱더 길어져갔다. 어떤 때는 그 가사의 잠이 하루 종일 계속되는 때도 있었다. ‘그’의 아내는 속이 상해 죽을 지경이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버릇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만큼 청승맞고 끔찍스럽기만 했다. 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꼴만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한데 그러던 어느 날, 이날부터 ‘그’의 아내는 남편의 그 망칙스러운 꼴을 더 이상 견뎌야 할 필요가 없어지고 만다. 물론 이혼을 해야 할 필요도 없어진다. ‘그’의 버릇에 드디어 고장이 생긴 것이다. 고장이 생긴 건지 일부러 그랬는지는 끝내 알려지지 않고 말지만 하여튼 이날도 ‘그’는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분이 몹시 우울해져가지고 와서 또 그 가사의 잠을 시작한다.

“저런 꼴로 늘 죽어 눕기가 소원이람 차라리 정말로 한번 죽어보기라도 하라지.”

‘그’가 막 그 가사의 잠을 시작했을 때 ‘그’의 아내가 혼자 무심히 그렇게 중얼거린다. 한데 ‘그’는 정말로 그것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영영 그 가사의 잠에서 깨어나질 않고 만다…….



이청준作
"소문의 벽"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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