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세베루스 스네이프. 그는 해리포터 시리즈 중, 7권 내내 악역의 대명사로 자리잡았었다. 주인공인 해리를 극도로 혐오하며, 그를 잘 보려는 시도조차 하려하지 않아 보인다. 가끔 해리가 그에 대한 과거를 알아갈수록 그는 더욱 해리를 혐오하며 증오까지 하는듯해 보인다. 결국 6권에선 어둠의 마법에 대항하는 최고의 마법사이며, 해리의 가장 큰 버팀목인 덤블도어를 해리의 눈 앞에서 살해하고 만다. 이 뒤로도, '불사조 기사단'을 쫓으며 조지의 귀를 자른다든지, 교장이 된 이후 학교에서의 폭정은 등장인물, 심지어 독자로 인해 그에 대한 미움만 커져가게 한다. 그러나 그는 과연 처음부터 해리를 혐오하고 어둠의 마법을 추종했을까? 그리고 그렇게 '악'이라는 한 글자로 평할만한 사람일까?
해답은 그의 기억 속에서 나타난다. 가장 먼저 독자에게 보여지는 모습은 열 살 남짓한 그와 해리의 어머니, 릴리의 모습이다. 처음 그는 보통 사람의 눈에는 괴상한 모습('정상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알지 못했다는 변명을 한다쳐도 이상해보일 만한 모습을 말이다.)을 하고, 차마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하며 덤불속에 숨어있기만 한다. 그러다 마법인지도 모르고 마법을 사용하는 릴리와 그녀의 누이인 페투니아의 다툼 속에서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릴리에게 '마녀'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자신도 마법사라는 사실을 처음 알려준다. 그러나 옆에 있던 페투니아의 무시 섞인 답으로 자신도 경멸을 섞은 채로 말을 이어가게 되고 한동안 준비해왔던 순간을 망쳐버리고 만다.
이렇듯 스네이프는 그 뒤로 릴리에게 다가가려 노력하지만 그녀와 페투니아의 한계, 혈통적 한계의 앞에서 충돌하고 만다. 그는 페투니아를 공격하고, 이는 결국 그와 그녀 앞에 장애물 그 이상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또, 기숙사가 다르게 갈리며 생긴 한계는 그를 절망스럽게 만들고 만다.
시간이 지나며 그들 앞엔 이해의 부재 앞에 생긴, 감정의 골만이 깊어지고 말았다. 혈통의 순수함과 어둠의 마법. 이를 추종하는 스네이프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릴리. 그리고 그를 잊지 못할 정도로 모욕하게 만든 제임스 포터의 존재는 앞서 생긴 마음의 벽과 씻지 못할 좌절로 그녀를 '잡종'이라고 부르고 만다. 지금까지 다른 '머글 태생' 마법사들을 거리낌 없이 불러왔던 그지만 이번 만은 달랐다. 그가 가장 사모하던 그녀. 근 십년 간 그의 마음 속에 자리 잡아온 그녀를 모욕하고 만 것이다. 그녀는 이를 듣고 이 이후론 그를 지금처럼 가장 친한 친구로 대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를 경멸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스네이프가 본격적으로 릴리를 다른 '머글'과 동일하게 혐오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마음은 지속되었다. 극심한 혼란기. 언제 죽고 살지 모르는 그러한 전쟁과도 같은 삶 속에서 그는 선과 악의 제일 세력가들에게 부탁을 한다. 릴리의 안전을 부탁한 것이다. 그 때 그녀는 이미 그가 혐오해 마지못했던 제임스 포터와 결혼을 했고 아들까지 가진 상태였다. 그래도 그는 결코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 그가 결국 선택한 길은 그녀를 다른 '머글'들과는 다르게 보는 것이었다. 릴리는 언제나 그에게 있어서 다른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의 죽음 앞에 그는 흐느꼈다. 차라리 자신이 죽었으면 한다는 그. 그는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 그녀를 추억하고 그녀의 마지막을 보호하기 위해, 그는 릴리의 아들, 그리고 제임스 포터의 아들을 보호하기로 한다.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을 결코 알리고 싶지 않아 그는 자신의 보호를 끝내 비밀로 부치기로 한다.
그리고 수년 간 그는 해리를 지켜보며 보호해 줬다. 결코 해리를 예쁘게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의 행동들 속에서 제임스 포터의 모습을 본 그는 해리를 싫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덤블도어가 해리는 죽어야만 한다고 했을 때 그는 말문이 막히고야 말았다. 그는 릴리를 위해 그를 보호했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못했다. 그러나 해리가 죽어야 한다는 현실 앞에 충격을 받고야 말았다. 그의 패트로누스는 암사슴이었다.
릴리. 그는 릴리를 잊은 적이 없다. 아무 의미 없는 편지의 한 장. 그를 보관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녀의 사랑이 담긴, 흔적이 남긴 편지를 가지고자. 그리고 제임스와 포터를 찢어낸, 그녀의 사진을 그는 소중히 간직했다. 정말로 사랑했기에. 잠시 그가 이성을 놓고 그녀를 모욕했던 순간, 단 한순간 때문에 그는 그녀를 놓쳤다. 그러나 스네이프는 그 이후로 그 장면을 두고두고 후회했음에 틀림 없다. 그 이후로도 자신의 생명을 건 임무, 릴리의 마지막 살아있었음을 증명하는 흔적인 포터를 생명을 잃는 상황이 있었음에도 지켰기 때문이다. 다시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면, 그는 모든 것을 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책에는 확실한 답이 쓰여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러함에 확신이 드는 것은, 그가 그만큼 그녀를 사랑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스네이프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초록색 눈동자였다. 그는 그 안에서 릴리를 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