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
원제 :  The Life and Strange Surpris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of York Mariner by Daniel Defoe
[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그의 신기하고 놀라운 모험]

(1993년 발행, 김병익·최인자 역[순서대로 상하권], 문학세계사)

<리뷰가 스포일러를 담을 수 있으니 주의하길>

책을 한무더기 쌓아놓고 아직 보지 않은 책들이 많긴하다. 그래서 요즘은 사놓은 책들을 하나하나 읽으려 노력한다. (제일 먼저 볼 것은 며칠전에 산 열림원 쥘베른 전집의 신작인 황제의 밀사겠지.)

하지만 얼마전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찾던중 내 눈에 띈 책이 있었다.
바로 로빈슨 크루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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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찍은 사진

사실 주된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빈슨 크루소라는 사람이 과한 욕심으로 뱃길에 나섰다가 28년동안 무인도 생활을 하게되고, 결국 극적으로 자신의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간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중앙도서관의 책꽂이에 있는 모습을 보니 흥미로운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내가 알고 있는 스토리는 그정도가 전부인데 상,하권이나 있다는것을 보고는 어떻게 스토리가 부풀려졌는지, 내가 지금까지 알던 것과는 어떻게 다른지 한번 알아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주저없이 책 두권을 뽑아들고 대출을 하면서 책의 목차를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지금까지 내가 알던 얘기는 상권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럼 이해를 위해 하권의 목차를 한번 써보자.


나의 섬을 다시 찾아가다
스페인 사람들과 반란자들
다시 나타난 야만인들
대전투
스페인 사람들이 받은 대접
섬에서의 결혼식
윌 에킨즈의 회개
프라이데이의 죽음과 마다가스카르에서의 싸움
나 없이 항해를 하다
중국으로 가는 길
중국 횡단 여행
타타르 족 사이를 지나가다
시베리아와 러시아를 지나 고향으로 돌아가다


여담이지만 나만 그랬을지는 몰라도 중간의 프라이데이의 죽음이라는 소제목은, 책을 읽기 전에초대형 스포를 당한 기분이라 아직까지 읽기가 꺼려질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중국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관심이 없었던 내가 바보스러워질만큼 말이다.

어쨌든 일단 상권은 빠르게 읽어 나갔고 하권도 잡고 있으니, 리뷰라긴 뭐하지만 느낀점을 쓸 최소한의 여건은 된다고 생각하고 마저 써보기로 하자.

어렸을 적 문학 전집등에서 로빈슨 크루소가 빠져있으리란 생각은 하기 어렵다. 그만큼 모두들 잘 아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로빈슨의 고립과 그 상황을 극복하려는 고된 노력, 그리고 동료를 얻고, 전투를 치룬 뒤 탈출에 성공하는 모습까지. 그런데 압축된 내용만을 읽은 사람이 대부분일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원래 내용 하나 하나에 들어있는 의미가 이 시점의 나에게 꽤나 새롭게 다가왔다. 그 예를 한번 꼽아보자면 신앙심에 대한 장황한 언급이 그 중 가장 크다 할 것이다. 18세기 영국인의 글이라는 점에서 기독교적인 냄새는 지울 수 없겠지만, 현재 내가 보기에는 깊은 생각이 필요할만큼 이 현상이 강하다. 가령 로빈슨이 무슨 일을 하나 하고나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신을 찾는다던지,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등의 언급이 한 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점을 꼽아보자면,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진취적인 영국인의 이미지를 재확인함과 로빈슨을 통해 나타난 서구 중심주의의 재발견이 뚜렷이 보인다. 다니엘 디포는 로빈슨을 통해 토인의 식인 문화를 읽어낸다. 이에 대해 로빈슨은 어찌 생각하면 우유부단해 보일만큼 처음에 결론을 확실히 짓지 못한다. (이와 관련해 심리적 갈등이 꽤나 볼만하다) 그러나 결국 프라이데이를 구하면서 야만인들에 대한 심판을 내린다. 이 대목중 기억 나는 부분을 써보자면 이렇다

- 그러나 금방 말한 그 잔인한 야만족과 서로 잡아먹는 추악하고 흉칙한 짐상 같은 풍습에 대한 극도의 증오감이 가슴에 깃들어 있어서 기억을 씻지 못하고 우울한 기분을 벗어날 수 없었다.…… 196.pg[상권]
- 더구나 내 정신은 복수심으로 2,30명을 칼로 찔러 죽이는 유혈의 통쾌함을느꼈다. 나는 사람을 잡아먹는 야만인들이 놀던 장소와 흔적을 볼 때마다 공포감에 떨었는데 그만큼 내 원한도 더욱 깊어졌다.…… 199pg[상권]

이 부분들은 로빈슨이 그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증오까지 하게 되는 부분을 나타낸 부분이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로빈슨은 이에 대해 종교적인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껏 서구의 윤리의 측면에서 야만인(이 말 자체도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문화가 다르다는 점으로 야만적이라는 말을 꼭 써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해를 돕기위해 이 단어를 계속 쓰겠다.)들을 증오까지 하게 되었다면, -그 윤리의 바탕은 분명 기독교일 것이다.- 이제 기독교의 관점에서 다시 그들을 생각해 본다는 점이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좀 길진 몰라도 읽어볼만 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 지방 사람들의 괴상한 풍습을 보고 공포로 말미암아 처음엔 타오르는 격정만 느꼈지만, 사실 그들 죄에 대해서는 전혀 깊이 검토해 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런 방법으로만 그들의 잔인하고 타락한 야망을 불태우게 된 것은 세계를 지배하는 하나님이 묵인해 주는 것 아닌가? 그래서 악습은 없어지지 않고 대를 거쳐 내려오지 않는거? 또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고 지옥에 떨어질 만큼 타락한 자연의 본성에 쫓겨 이처럼 잔인한 일을 행하고 무서운 풍습을 이어받은 것이 아닌가? 나는 이런 점까지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까 말한 것처럼 오랫동안,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아무런 소득없이 멀리 순찰하는 일과에 진력이 나기 시작하자, 내 행위 자체에 대한 견해가 바뀌면서, 보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정말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권한과 사명감이 있다고 그들을 심판하고 처형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죄는 하나님이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런 처벌도 주지 않고 몇 세대 동안 내려온 게 아닌가? 또 어떻게 보면 그들 스스로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되도록 한 것이라 여겨지지 않는가? 그들은 내게 어떤 피해를 입혔는가? 나는 무슨 권리로 그들끼리 하는 무차별한 피의 분쟁에 가담하려는가? 혼자서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심사숙고했다.이 특별한 경우를 하나님 자신이 어떻게 심판하는가에 대해 어떻게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200-201pg, 상권]

이렇게 로빈슨의 생각을 들여다 보면 다니엘 디포의 생각도 언뜻 볼 수 있다. 서구 윤리의 입장에서만 외부 세계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종교를 토대로 다시 한번 밖을 내다보자는, 어찌보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각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지금까지 책 내용을 봤다면 내가 빌린 책을 한번 다시 봐보기로 하자. 이 책은 93년에 출판되어 바로 그 다음해에 학교 도서관에 들어온 듯 하다. 인증샷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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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책을 열자마자 오래된 책의 냄새가 강하게 풍겨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꺼리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역하게 느껴질만큼 말이다. 이만큼 다른 사람들이 많이 보았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넘기는데 한장 한장마다 반가운 표시들이 보였다. 바로 독자들의 주석을 보았다는 점이다. 학교 입장에서는 달가워 하지 않을 단순한 낙서(전화번호나 이름, 과 같은 정보들)들 부터 이 책을 보고 느낀점을 상세히 쓰거나 중간 중간에 주석을 단 점은 e-book에선 결코 느낄 수 없는 느낌일 것이다. 물론 인터넷으로 바로 댓글을 확인할 수 있고 더 빠른 측면이 있지만, 오래된 책의 세월과 함께 께적거린 주석을 읽은 기분과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만 이에 대한 생각을 마쳐야 할 것 같다. 이제 하권을 반납일까지 마저 읽고 황제의 밀사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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