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소(포스코)의 입지

※ 공업의 입지 ※

베버는 여러 업종의 공업을 원료지향성, 시장지향성, 동력지향성, 노동지향성, 집적지향성, 입지자유형 등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점차 시장 요인이 중요해지고 운송수단이 발달했으며, 공업 집적의 경향이 강화되었다. 특히 의류ㆍ신발, 인쇄ㆍ출판업과 같이 대도시에 입지하면서 도시의 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업종이 증가하였고, 대량의 원료를 원거리 수송하면서 공장을 운영하는 공업 지역이 생겨났으며, 비용 절감 효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공업의 집적이 이루어졌다. 즉, 공업입지에서 수요 극대화 지점이 중요해졌으며, 원료의 대량 수송 때문에 항구와 같은 수송 적환지가 주요 공업으로 부상하였다.

노동자들은 도시에 집중되어있었으므로 노동력 절감 지점을 특별히 분리할 수 없게 되었고, 공업 입지에서 석탄 산지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점차 약화되었다. 공업이 도시에 입지하든가, 아니면 공업 지역이 대도시, 즉 대도시 시장이 되었다. 더욱이 부품이나 반제품을 원료로 하는 공장은 기존의 공업 지역에 입지하는 경향을 보였으므로, 공업은 전후방 연계의 편의성 때문에 고도로 집적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대도시에 입지하는 시장 지향성 공업이 흔하며 원료 산지를 지향하는 공업은 적다. 노동 지향성의 의미도 고급 인력이나 기술 인력이 있는 곳에 공업이 입지하려는 경향으로 변하였는데, 그런 지역은 결국 기존의 대도시이거나 대규모 공업 도시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베버의 이론은 수정되거나 비판되어 수요중심이론, 집적경제론, 적환지 이론 등이 제시되었다. 최근에는 다 공장 기업이 등장하고, 분공장 경제가 진행되면서 베버의 이론은 그 적용 범위가 무척 협소해지게 되었다.

※ 제철소란? ※

제철소란 철강을 생산하는 사업장을 말한다. 제철소를 선강일관공장(銑鋼一貫工場)과 독립제강공장(獨立製鋼工場)으로 나눈다. 선강일관공장이란 고로에서 철광석을 제련하여 선철을 만들고 이것을 제강로(주로 산소전로)에서 정련하여 강을 만든 다음, 강괴(鋼塊)로 하여 이것을 다시 압연가공해서 강재(鋼材)를 생산하는 등 공장에서 제선·제강·압연의 3개공정을 통하여 철강을 생산하는 공장을 말한다. 한국의 포항제철은 선강일관공장이다. 한편 독립제강공장이란 고철·환원철·선철 등을 원료로 하여 전기로·평로에서 제강한 다음, 압연 가공하여 강재를 생산하는 공장을 말하며, 한국의 인천제철·동국제강·극동철강·강원철강 등에서 이 방법으로 생산하고 있다. 철강공장에 따라서는 제선·제강의 시설이 없이 압연시설만을 갖추어 타 공장으로부터 반제품을 입수하여 강재를 생산하는 단독압연공장도 있으나 이것은 중소철강공장에 속한다. 전 세계의 조강생산량은 연간 7억 2,000만 t이며, 철강생산량은 러시아·일본·미국·독일의 순이고 한국은 18위이다.

※ 포항시의 산업구조 ※

포항시는 지리적으로 낮은 구릉성 산지, 충적평야를 이루고 있어 농경지로 적당하다. 중앙을 가로지르는 형산강과 해안선을 따라 해안단구가 발달한 해안단구 지형으로 인해 농경지로 발달할 수 있었다. 또한 동해를 끼고 있어서 어업이 발달하였으며 특히 과메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포스코(POSCO)를 비롯한 7개의 공단이 입지한 공업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포항은 첨단 산업을 육성하는 도시로서 포항테크노파크 단지, 제4대 방사광가속기, 국가나노기술집적센터, 지능형로봇(IR)연구센터 등이 위치해 있으며 포항 공대도 이러한 첨단 공업 육성 정책에 이바지하고 있다.

구분

사업체수

비율

34,271

100

농업, 어업, 임업, 광업

42

0.1

제조업

2,206

6.4

건설업

1,138

3.3

전기, 가스, 수도사업

9

0.0

도소매업

9,276

27.1

숙박 및 음식점업

8,285

24.2

운수, 통신업

3,464

10.1

금융업, 보험업

400

1.2

부동산, 임대 및 사업서비스업

1,496

4.4

교육서비스, 보건 및 사회복지사업, 공공행정, 사회보장행정

2,407

7.0

기타오락, 문화 및 개인서비스

5,548

16.2

포항시는 1968년 건설된 포항제철을 통해 국내 제 1의 철강도시로 성장했지만 포항시는 포스코 이외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면서 2000년 이후 인구가 51만명을 정점으로 내리막에 접어든 상황에 처해있다. 이는 철강중심의 포항산업이 더 이상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면서 포항의 성장이 멈추고 있다는 것에 기인한다.<표 2 참조> 또한 철강중심의 단순한 산업구조이기에 지자체의 재정수입 상당수가 포스코와 중심의 산업구조, 생산기능 중심 등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현재 산업구조로 보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취약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공단의 입지로 인한 인구 유입에 따라서 다른 산업도 발달하였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경제개발계획으로 인한 갑작스런 공장들의 유입으로 환경 파괴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 포항제철은? ※

포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포항제철이다. 그만큼 포항에서 포항제철이 주는 위치는 절대적이다. 특히 국내 대기업으로는 유래 없이 1972년 12월 31일, 서울에서 포항으로 본사를 이전하여 지역의 경제, 사회, 문화, 교육발전 및 사회 간접자본 시설 확충에 이바지하여 포항을 대표하고 포항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듯하다. 제철공업은 철광석을 제련하여 선철과 강철을 생산하는 공업으로 포항제철은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목표로 경제개발계획 중 2차 경제개발 기간 중이었던 1970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이곳에 대규모의 제철소를 건설하게 된 이유는 큰 배의 접안이 가능하고 영일만이라는 자연적 조건에 의한 항구발달에 유리한 점과 형산강의 풍부한 공업용수, 넓은 배후시설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제철소는 수익은 낮으면서 많은 기술과 자본이 필요하여 후진국에서는 어려운 산업으로 인식되어 출발당시 자금의 확보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당시 일본과의 국교정상화의 대가로 받은 대일청구권자금 7천만 달러를 바탕으로 오늘의 발전을 이루었으며 현재 270만평의 부지에서 매출 11조원 내외, 종업원 19,000 여명, 조강 능력 2,800만 톤으로 주로 열연, 후판, 선재, 냉연, 전기 강판, 스테인레스 스틸제품 등을 생산하고 있다.

1968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로 설립이후 포항에는 본사와 포항종합제철 포항 제철소, 광양에는 광양 제철소 서울에는 포스코 센터가 있다. 포항 제철소는 거의 모든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광양 제철소는 소품종 대량 생산 체제로 일반 수요가 많은 열연, 냉연 제품을 주로 생산해 상호 보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해도동에서는 포스코에 대항한 궐기대회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 이유는 포스코 공단이 들어선 이후로 환경이 많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공단 내부에서 발생하는 먼지와 연기들이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면서 바닷바람에 의해 해도동일대가 공기 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밝혀지고 대형트럭들이 주로 강변 도로쪽을 이용하고 형산교를 건너기 위해 해도동을 지나가면서 도로 상태도 많이 나빠졌다. 대형트럭들이 다니면서 일으키는 먼지와 소음, 건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진동들이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이에 해도동 주민들이 형산강 둑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러한 피해에 대해 포스코는 보상할 책임이 없다고 하면서 피하고 있어서 시위는 끝났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다.

※ 포항제철 입지 이후 변화 ※

(1) 환경의 변화

다음과 같이 네 개의 항목으로 공간분석을 통해서 자연환경의 변화를 알 수 있다.

85-98

97-98

1(자연성 유지)

76

81

2(자연성 훼손)

17

13

3(자연성 회복)

1

3

4(자연성 변화)

6

3

● 1-자연성유지, 2-자연성훼손, 3-자연성회복, 4-자연성변화

연도별로 봤을 때, 85년에서 98년 사이에는 자연성이 유지된 부분이 76%로 가장 많았고, 자연성이 훼손된 부분이 17%, 자연성이 변한 부분이6%, 자연성이 회복된 부분이 1%로 나타났다. 97년에서 98년 사이에는 자연성이 유지된 부분이 81%, 훼손된 부분이 13%, 자연성이 변한 부분과 회복된 부분은 각각 3%로 나타났다. 자연성이 유지된 부분이 예상외로 많이 나타난 것은 분석지역이 산과 바다로 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85년에서 98년 사이에 자연성이 훼손된 부분(17%)과 비교해서 97년에서 98년, 1년 사이의 자연성 훼손 부분은13%로 나타났다. 이 수치로 보아 지난 10년간(85년-98년)보다 최근 1년간(97년-98년)의 도시 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85년에서98년 사이의 자연성회복은 1%인데 비해 97년-98년 사이의 자연성 회복은 3%로 상대적으로 높이 나타났다. 이는 최근의 무분별한 도시개발로 인한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1년간의 자연성 회복율은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85년과 98년 사이의 자연성 회복율이 낮게 나타나는 이유는 도시 개발이상대적으로 더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포항 및 영일만지대의 자연성 변화(해피캠퍼스 - ranigozi)>

(2) 인구의 변화

포항시의 인구는 광복당시 31,251명으로 집계되었고 6 25직전까지 50,131명으로 늘었다가 전쟁 후 다시 45,949명으로 감소하였다. 1950년대 후반 해병대의 주둔과 경제개발, 1962년 국제개항장의 지정으로 인구가 증가하여 1961년 6만 명, 1968년에는 7만 명을 돌파했다. 1970년대 포항제철공단이 들어서면서 비약적인 증가를 하여 1973년에 10만, 1980년 20만, 1988년 30만을 넘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와 좁은 지역으로 인한 과밀현상의 지속과 철강공단의 경기침체로 인한 인력감축 등으로 연10%의 인구증가율이 2%대에 머물게 되고, 영일군과 통합전인 1994년에 327,504명에 이르게 된다. 최근에는 2001년 517천명에서 2002년에는 513천명으로 감소하였다.

지금처럼 포항시는 기업 유치에서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는데다 성장 동력 부재로 인한 투자의욕 저하, 지역상권 위축, 출산율 저하 등의 영향으로 전입에 비해 타 지역으로의 전출이 더 많은 상태이다. 또한 포항제철을 비롯한 지역 주력산업인 철강업체들이 IMF이후 경영합리화에 따른 대규모 인원 감축에 경기 불황까지 겹치면서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들이 대거 수도권 등 타 지역으로 옮겨가는 것도 포항 인구 감소의 한 요인이다. 만약 포항시의 인구가 50만 명이 붕괴될 경우 포항시의 조직체계 변화는 물론 세수 등 재정 수입도 감소해 지역경제 침체 등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다.

포항시 인구가 50만 미만이 될 경우 먼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기구와 정원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남, 북구청이 폐지되고 기존 2구청 14과, 4국 22과의 기구가 5국 24과 이내로 축소된다. 또 지방자치법 시행령에 따라 부단체장 직급도 지방이사관(2급)에서 지방부이사관(3급)으로 낮아지게 되며 18개 분야 42개의 광역시. 도 사무를 시가 직접 처리할 수 있는 대도시 특례에 관한 사무권한도 없어지게 된다.

포항시는 특히 인구 1만 명 감소 때 보통교부세, 일반재정보전금, 주민세 등 총 40억 원 가량의 세수감소가 예상돼 자치단체의 살림살이마저 크게 어려워지게 된다. 인구감소 우려가 커지자 지역 시민단체인 `포항뿌리회(회장 이성환)'는 이날 포항지역 발전과 '경북 제1의 도시'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각 급 학교와 기업체, 기관단체 등을 통해 '포항인구 늘리기 범시민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우선 기업체 임직원과 타 지역 유학생, 시민사회단체, 향우회원 등의 주소 갖기 운동을 전개하고 포항시에 기업유치와 신규투자 및 대형프로젝트 유치 및 추진 등을 촉구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연말까지 언론을 통한 범시민 홍보를 전개하는 한편 10월중 시민사회단체 모임을 갖고 인구증가대책을 논의하고 인구 늘리기에 시민사회단체가 솔선수범해 줄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

포항시도 인구감소가 우려할만한 당면 현안이라고 보고 조만간 인구증가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포항의 인구 감소는 신규투자 감소와 경기불황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일어나는 사안이기 때문에 경제와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를 종합해 조만간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3) 시가지의 변화

항구도시로 성장한 포항은 원래 형산강의 구하도에 속하는 수로의 항만과 배후산지 사이의 좁은 해안에 형성되었다. 현재 이곳은 시청, 경찰서, 항만청, 세관, 여객터미널 등이 모여 있다. 포항제철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늘어나 신도시가 구시가지 남쪽에 연이어서 형성되었다. 섬으로 분리되었던 형산강 하구의 송도, 해도 일대도 시가지화 되었다. 오천 지역은 해병대의 주둔으로 군사적 기능의 성격을 가졌으나 크게 발달하지 못했으며 연일, 대송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흥해는 도로의 확장과 넓은 평야를 바탕으로 신도시 형태로 발달하였다. 특히 포항제철의 사택단지와 포항공대가 들어선 효곡동 일대가 서구형의 신시가지로 쾌적한 주거환경을 바탕으로 발달했으며 최근 주변의 이동지구와 유강지구에 대단위의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포항의 새로운 발전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포항제철에서 생산한 물자들의 운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포스코 - 5광장 - 동국대학교병원 간에 도로를 개통하였다. 특히 오광장 쪽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으나 현재에는 동국대학병원을 비롯한 종합 병원들과 대형할인매장, 한국은행을 비롯한 다양한 은행의 입지가 이루어질 정도로 교통과 물자 소통이 원활하다. 형산교와 신형산교를 건설하여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던 종합제철소와 시가지를 연결시켰다. 이 다리를 통해서 통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해도동의 강변 자전거도로를 만들기도 하였다. 통근버스가 생기면서 점차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줄어들었지만 현재는 공원으로 가꾸어서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포항시는 예전에 섬이었던 지역이 개간되어 육지가 된 곳이 많이 있는데, 송도, 해도, 대도 등의 지명들이 바로 이전에 그곳이 섬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땅을 간척해서 그곳에 처음에는 농사를 주로 지었으나 현재에는 주택가가 되어있으며, 해도나 대도동에는 제철소 노동자 중에서 장기적으로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이나 업무상 방문하는 회사원, 제철소 견학자들을 유치하기 위한 식당이나 숙박시설(주로 여관이나 모텔)이 많이 분포해 있다.

구분

학교수

학생수

교사수

대학원

8

1,282

-

대학교

2

4,434

293

전문학교

2

6,073

289

고등학교

25

22,083

1,397

중학교

33

22,239

1,228

초등학교

59

45,403

1,887

유치원

94

6,505

383

특수학교

1

179

45


포스코의 인재 양성과 포항시의 첨단도시 건설 목표가 맞물려 들어가면서 포항공과대학이 생겼다. 포항에는 포항공대를 비롯하여 많은 교육기관들이 있다. <표4>를 참고하면 포항에 교육기관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교들은 규모나 여러 면에 있어서 생산적으로 돈을 벌어서 지대를 내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지가가 낮은 곳에 위치하려 하다 보니 포항제철과 함께 성장해온 남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되어있던 우현, 창포, 두호동을 비롯한 북구 지역으로 많이 치우쳐져 있다. 북구 지역은 주로 구릉성지형이긴 하지만 산지이기 때문에 교통이 불편하고 토지가 척박하다는 단점이 있었던 곳이었다. 이로 인해서 주로 산지였거나 간간히 농경 지역이었거나 이용되지 않아 공터였던 땅들이 학교의 입지와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

인구 증가와 함께 그동안은 산지나 농․어촌이었던 곳이 점차 택지로 개발되었다. 주택위주였던 택지도 아파트 단지로 변화하였으며, 아직도 개발 중인 곳도 있다. 학교가 늘어났으며 학교가 주로 분포해 있는 우현동, 창포동, 두호동 일대에 아파트 단지, 상가지구들이 들어섰다. 두호동과 환호동 지역은 지금도 아파트 단지 건설이 한창이다.

또 인구 증가에 따른 최근의 또 다른 변화는 법원과 검찰과 같은 사법 기관이 생겨났다는 점인데 이들 기관과 함께 교도소가 들어오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반대의 목소리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이 생김으로 포항의 규모가 커졌다는 점과 법원, 검찰이 들어옴에 따라 법조인들의 많이 유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발만을 추구하여 포항의 환경을 파괴시킨다는 시민들의 부정적인 시선들 때문에 포항제철은 환호동에 환호 해맞이 공원을 만드는데 지원했다. 시민들의 휴식공간을 제공하면서 문화행사를 유치하였다. 원래 환호동은 바닷가이고 지형이 고르지 않아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은 아니었다. 공단 근처에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든 송도해수욕장 대신에 해맞이 공원과 함께 북부해수욕장을 정비하여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송도해수욕장은 너비 70 m. 길이 3 km. 물이 맑고 모래가 고우며 경사가 매우 완만하여 해수욕장으로서 유리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1914년 이후 방풍림으로 조성된 측백나무 ·해송 등의 울창한 숲이 배후에 펼쳐져 있으며(송도 솔밭), 수온(水溫)도 적당하다고 하여 1970~80년대에 많은 관광객이 찾았던 포항의 대표적인 관광지였다.

그러나 포항제철 등의 대규모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로 인한 해수 오염과 공장 증설에 필요한 모래의 무분별한 채취로 해수욕장의 경관이 파괴되어 이제는 관광객의 발길이 거의 끊어진 곳이 되어버렸다. 관광객의 수가 줄어들면서 상점들이 점차 문을 닫았으며, 주변의 건물들도 개발이 되지 않아서 오래된 건물들이 마치 폐가와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송도 주변의 개발이 침체되면서 그 일대가 우범지대로 변하였다. 포항시에서는 그 점을 시정하기 위해서 방치되어 있었던 송도 솔밭을 개발하여 공원으로 변화시켰다. 현재 송도 솔밭은 운동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 기여하고 있다.

※ 참고 자료

<논문 및 단행본>

• 전종한, 서민철, 장의선, 박승규, 2006, 인문지리학의시선, 논형

• 조지욱, 2005, 개념세우기 한국지리, 두산동아

<인터넷 사이트>

• 포항시청, http://www.ipohang.org/

• 空의 세계에 흐르는 蓮香 ::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sattva9715.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162

<신문 기사>

• 경북 매일 신문,http://www.kbmaeil.com/local_news/?CATE=local_news&CATE2=local_news_a&CATE3=6522&CATE4=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69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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